직장을 잃은 사람이 가장 먼저 잃는 게 뭔지 아십니까. 저는 그게 '월급'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가'라는 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태권도 지도자의 꿈이 좌절되고 행정 지원 업무로 밀려났을 때, 저도 그 감각이 서서히 지워지는 걸 느꼈거든요.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는 바로 그 지점을 건드리는 영화입니다.

20년 경력도 막지 못한 도끼질, 그 존재론적 위기
유만수는 태양 제지에서 20년 넘게 커리어를 쌓은 인물입니다. 올해는 펄프맨상까지 받았죠. 그럼에도 하루아침에 구조 조정의 대상이 됩니다. 미국계 사모 펀드(Private Equity Fund)가 회사 지분을 사들이고 인력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여기서 사모 펀드란 소수의 기관 투자자나 고액 자산가로부터 자금을 모아 기업을 인수한 뒤 비용을 줄이고 수익을 극대화해 되파는 방식으로 운용되는 펀드를 말합니다. 경력이 길다는 건 연봉이 높다는 뜻이고, 나이가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도끼는 가차 없이 그의 목을 칩니다.
이 장면이 영화적 과장처럼 느껴지지 않는 건, 현실에서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50대 이상 장기 실직자의 재취업률은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고령 노동자일수록 구조 조정의 최우선 대상이 되는 경향이 뚜렷합니다(출처: 한국고용정보원).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태권도라는 분야에서 20년 가까이 땀을 쏟았지만, 지도자 채용 현장에서 돌아온 건 "교수 경험이 부족하다"는 말이었습니다. 경험의 깊이가 아니라 특정 형식을 갖췄느냐가 기준이 되는 구조 앞에서, 저는 유만수가 해고 통보를 받고 멍하니 서 있던 장면을 이해했습니다. 그건 단순히 직장을 잃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정의해온 언어를 통째로 빼앗기는 감각입니다.
영화에서 도끼(Axe)는 이중적 기호로 작동합니다. 여기서 기호(Sign)란 어떤 대상을 직접 가리키는 동시에 다른 의미를 내포하는 상징적 장치를 말합니다. 도끼는 해고이면서 동시에 살인을 암시하며, '어쩔 수 없다'는 말은 미국 본사도, 유만수 자신도, 그리고 새 고용주도 반복해서 내뱉는 합리화의 주문으로 기능합니다.
'어쩔 수 없다'는 말 뒤에 숨은 계급적 욕망과 위선의 합리화
영화가 단순한 사회 고발물에서 벗어나는 지점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시스템이 만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만수에게는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 집을 팔고 아파트로 이사해 생활비를 줄이는 것
- 아내의 커리어를 살려 생계를 분담하는 것
- 제지 업종이 아닌 다른 분야로 방향을 트는 것
- 장인의 도움을 포함한 가족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것
그럼에도 만수는 이 모든 방법을 거부합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자신이 수십 년간 일궈온 '중산층 가장'이라는 정체성과 멀어지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산층 가장이라는 정체성은 단순히 생활 수준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린 시절부터 평균 열에 한 번씩 이사를 다니며 불안정했던 삶을 자기 손으로 매듭지은 증거이자, 스스로를 증명하는 방식입니다. 그 집을 팔고, 그 차를 내놓는 것은 단순한 재정 조정이 아니라 자기 부정에 가깝습니다.
저도 행정실 구석에 앉아 도복을 입은 강사들을 바라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느꼈던 감정이 단순한 질투가 아니었다는 걸 이제는 압니다. 그건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내가 없다'는 감각이었고, 그 감각이 만수가 타인을 제거하려는 충동과 구조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걸 영화를 보며 새삼 실감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며 내 과거를 이렇게 날카롭게 들여다보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영화의 미장센(Mise-en-scène)도 이 점을 정밀하게 뒷받침합니다. 미장센이란 프레임 안에 배치된 배경, 조명, 소품, 배우의 위치 등 화면을 구성하는 모든 시각적 요소의 총체를 뜻합니다. 저택의 구조는 만수가 꿈꾸던 삶의 형태를 구체화한 동시에, 그 공간이 침범당하고 진실이 폭로되는 최후의 무대로 기능합니다. 공간 자체가 이야기가 된다는 점에서, 건축학 교수였던 박찬욱 감독 부친의 영향이 이 작품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로봇이 종이를 옮기는 공장, AI 자동화 시대의 예고된 소외
영화의 마지막 면접 장면은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뼈아프게 받아들인 장면입니다. 만수는 "적어도 한 명은 필요하지 않냐"고 구걸하듯 말하며 자리를 얻어냅니다. 그런데 그 공장에서 종이를 옮기는 건 이미 로봇입니다. 그가 사람을 죽여가며 차지한 자리는, 조만간 자동화(Automation)로 대체될 한시적 공간에 불과합니다. 여기서 자동화란 기계나 소프트웨어가 인간의 노동을 대신 수행하도록 시스템화하는 것을 의미하며, 제조업과 물류 분야에서 그 속도가 특히 빠릅니다.
이 장면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만수의 목숨을 건 책략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습니다. 그가 지키려 했던 세계의 규칙 자체가 이미 무너지고 있었으니까요.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2025년까지 약 8,500만 개의 일자리가 자동화로 대체될 것으로 전망된 바 있습니다(출처: 세계경제포럼). 제 업종인 스포츠 교육 분야도 예외가 아닙니다. AI 기반 동작 분석 시스템이 일부 코칭 역할을 대신하기 시작하면서, 저 역시 '내가 쌓아온 시간이 앞으로 얼마나 유효할까'라는 질문을 자주 하게 됩니다.
이 영화가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쓰는 사람이 만수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스템도, 자본도, 기술도 모두 같은 말을 반복하며 노동자를 밀어냅니다. 그리고 그 말은 책임을 증발시키는 주문처럼 작동합니다. 만수의 비극은 그 주문에 가장 깊게 감염된 사람이 결국 자기 자신이었다는 데 있습니다.
결국 이 영화가 물어보는 건 하나입니다. 당신은 어디까지를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부를 것인가. 저는 극장을 나오는 내내 그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가 불편했다면, 그 불편함이 정직한 반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박찬욱 감독이 정확히 의도한 자리에 비수가 꽂혔다는 뜻이니까요. 극장에서 직접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