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 1억 2,500만 달러로 만들어진 영화 한 편이 전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5억 5,000만 달러를 긁어모았습니다. 처음 봤을 때 솔직히 "또 리메이크냐"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보고 나서는 그 편견이 완전히 부서졌습니다. 달콤한 판타지 안에 자본주의 풍자와 연대의 메시지가 조용히 녹아 있는 영화, 웡카 이야기입니다.

프리퀄이 성공한 이유, 설정부터 달랐습니다
웡카는 프리퀄(Prequel) 형식으로 제작된 영화입니다. 여기서 프리퀄이란 기존 이야기의 앞단을 다루는 작품, 즉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인물의 '그 이전 이야기'를 채워주는 구성을 말합니다. 1971년판과 2005년 조니 뎁 버전 두 편 모두 윌리 웡카가 이미 공장을 가진 인물로 등장했다면, 이번 영화는 그 공장이 생기기 25년 전, 막 세상에 발을 디딘 청년 웡카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감독은 패딩턴 시리즈로 유명한 폴 킹입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그의 연출 방식이 웡카에서도 그대로 살아 있었습니다. 어둡거나 기괴하지 않고, 현실의 잔인함을 동화 언어로 부드럽게 감싸는 방식이요. 2005년 팀 버튼의 웡카가 어딘가 차갑고 낯선 느낌을 줬다면, 이번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따뜻하고 밝은 에너지를 유지합니다.
흥행 성적 측면에서도 이전 두 편과 비교가 안 됩니다. 초기 예상 흥행 수익이 약 2억 달러였는데, 실제로는 그 두 배를 훌쩍 넘겼으니까요. 한국 개봉도 설 연휴에 맞춰 타이밍이 절묘했습니다. 경쟁작이 마땅히 없는 시기에,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뮤지컬 판타지가 들어왔으니 흥행은 사실상 예정된 수순이었습니다.
티모시 샬라메의 목소리가 이 영화를 완성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비주얼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의 노래 실력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거든요. 영화의 주제곡 Pure Imagination을 처음 들었을 때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원래 1971년 영화의 공식 주제곡인 이 곡을 티모시 샬라메가 부른 버전은 음색 자체가 달랐습니다. 극장 나오고 나서도 며칠을 흥얼거렸으니 말 다 했죠.
감독이 그를 캐스팅한 결정적 계기가 흥미롭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통계학 수업 과제로 만들었던 영상이었다고 하는데, 그 영상이 유튜브에서 지금 1,200만 뷰를 넘었습니다. 원래는 방송 등에서 조롱의 소재로 쓰였던 영상이 결국 그를 웡카로 만든 셈이니, 인생 참 알 수 없습니다.
캐스팅 후보군도 흥미로웠습니다. 에즈라 밀러, 톰 홀랜드, 라이언 고슬링, 그리고 티모시 샬라메가 거론됐는데, 비주얼·나이·이미지를 종합하면 결국 남는 건 두 명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스파이더맨 캐스팅 때도 이 두 사람이 마지막까지 경쟁했다는 점입니다. 그때는 톰 홀랜드가 선택됐고, 이번엔 티모시 샬라메가 웡카를 가져갔습니다. 두 배우가 이렇게 계속 엮이는 게 묘하게 재미있더라고요.
세트장과 촬영지, 유럽이 한 화면 안에 담겼습니다
웡카의 도시 배경은 어느 나라인지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프랑스, 밀라노, 스위스, 런던 등 유럽 여러 나라의 건축 양식을 섞어 만든 단독 세트장이기 때문입니다. 높이 11미터 규모의 공간을 무려 8개월에 걸쳐 지었다고 합니다. 이 세트를 설계한 프로덕션 디자이너(Production Designer)가 네이단 크롤리인데, 여기서 프로덕션 디자이너란 영화의 전반적인 시각적 세계관을 설계하고 구현하는 총책임 아티스트를 말합니다. 다크 나이트, 인터스텔라의 세트 디자인을 맡았던 인물입니다.
제가 이 대목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건 그가 AI를 활용해 건축 양식 시안을 시뮬레이션했다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훌륭한 도구를 안 쓰면 결국 뒤처진다"고 했는데, 이 말이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저도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AI를 어떻게 써야 하는가 늘 고민하는 입장이라, 그의 관점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실제 촬영지도 볼거리입니다. 제가 찾아보니 주요 장소들은 대부분 영국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 웡카의 화물선이 도착하는 항구: 영국 라임 레지스 항구
- 기린을 태우고 달리는 장면: 옥스퍼드 탄식의 다리 (신관과 구관을 연결하는 다리로, 시험 성적이 나온 학생들이 한숨을 쉬던 곳에서 이름이 유래)
- 숙박업소 굴다리 계단: 세계문화유산 도시 영국 바스의 퍼레이드 가든
- 누들과 엄마가 만나는 도서관: 옥스퍼드 대학 도서관 래드클리프 카메라
- 웡카의 초콜릿 공장 성: 이스트 서식스의 고성 (외관에 CG를 살짝 덧댄 수준)
해외여행을 특별히 즐기는 편은 아닌데, 이 장소들만큼은 한 번 직접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달콤한 판타지 아래 숨은 사회풍자, 어디까지 읽어야 할까
영화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든 생각은 이 영화가 꽤 많은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겉으로는 밝은 뮤지컬인데, 뜯어보면 자본주의의 독점 구조를 비판하는 레이어(Layer)가 촘촘히 깔려 있습니다. 여기서 레이어란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서사나 상징을 통해 깔아놓은 의미의 층위를 말합니다.
초콜릿 카르텔이 시장을 독점하며 신진 경쟁자를 짓밟는 구조는 현대 독점 자본주의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카르텔(Cartel)이란 동일 업종의 기업들이 가격·생산량 등을 담합하여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는 연합체를 말하며, 현실에서도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속적으로 적발·제재하는 불법 행위입니다(출처: 공정거래위원회).
움파룸파가 카카오 열매 하나에 1,000배의 보수를 요구하는 장면을 '원주민의 정당한 노동 대가'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읽었습니다. 그 장면이 구조적 해결책을 제시한다기보다는 착취에 대한 인과응보적 카타르시스에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통쾌하긴 하지만, 현실의 공정 무역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으니까요. 실제로 국제공정무역기구(Fairtrade International)의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카카오 농가의 대부분은 여전히 생산 비용에도 못 미치는 가격으로 원두를 공급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출처: Fairtrade International).
웡카가 글을 읽지 못해 악덕 계약서에 사인하고 빚더미에 앉는 장면은 저한테 묘하게 가슴에 꽂혔습니다. 20대 초반, 태권도 사범의 꿈을 안고 도장에 들어갔다가 정작 제 손에 쥐어진 건 행정 서류와 정산 장부였던 기억이 났거든요. 아이들을 가르치러 갔는데, 실제 시간의 절반 이상을 홍보 전단지 기획과 회계 정산에 쏟아야 했습니다. 웡카가 화려한 초콜릿을 만들고 싶었지만 지하 세탁실에서 빨래를 해야 했던 것처럼요. 그때 느낀 건, 열정이 아무리 순수해도 시스템을 모르면 그 열정이 오히려 착취의 빌미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회계를 전공하면서 숫자는 배웠지만, 그 숫자 뒤에 숨은 계약 구조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웡카와 누들의 관계가 더 의미 있게 보였습니다. 마법 같은 재능을 가졌지만 사회적 무지로 착취당하는 웡카와, 책을 통해 지식을 쌓은 영리한 어린 흑인 소녀 누들의 연대. 재능과 지식이 서로를 보완할 때 비로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가, 동화적 외피 안에 이렇게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습니다.
결국 웡카는 보는 동안 기분 좋고, 다 보고 나서도 한참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오마주와 이스터에그를 찾는 재미, 티모시 샬라메의 목소리, 유럽 전역을 압축한 세트장의 아름다움까지. 여기에 자본주의 비판이라는 씨앗을 달콤하게 코팅해서 심어놨습니다. 설 연휴에 온 가족과 함께 보고 돌아오는 길에 웡카처럼 한 번쯤 꿈을 꿔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직 못 보셨다면, 지금 바로 보러 가실 것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