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34 영화 30일 리뷰 (관계 권태,기억상실,부부갈등) 오랫동안 함께한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밥 먹는 꼴도 보기 싫어진 경험, 한 번쯤 있지 않으신가요. 저도 그런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우연히 본 영화 한 편이 꽤 묵직하게 남았습니다. 강하늘, 정소민 주연의 영화 입니다. 코미디로 포장됐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불편할 만큼 현실적인 부부의 이야기입니다.이혼 직전 부부의 기억상실, 팩트로 먼저 짚어보면영화의 전제는 단순합니다. 이혼 숙려 기간 중 동반 기억상실증(Anterograde Amnesia)에 걸린 부부가 서로를 낯선 사람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는 설정입니다. 여기서 기억상실증이란 특정 사건 이후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거나 과거 기억을 불러오지 못하는 신경학적 상태를 말합니다. 드라마틱한 장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외상성 뇌손상(TBI, Traumatic.. 2026. 4. 24. 이터널 선샤인 리뷰 (비선형 구조, 기억 삭제, 자기 수용) 헤어지고 나서 그 사람과 관련된 것들을 전부 지워버리고 싶었던 적, 한 번쯤은 있지 않으신가요? 저도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우연히 다시 꺼내 든 영화가 바로 이었습니다. 기억을 지울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두 시간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비선형 구조가 만들어내는 감정의 층위영화를 처음 보셨다면, 도입부의 혼란스러움을 기억하실 겁니다. 눈 내리는 해변에서 낯선 여자에게 말도 제대로 못 건네는 조엘, 그리고 어느 순간 갑자기 뒤바뀌는 시간대. 처음엔 '이게 대체 무슨 순서지?' 싶었는데, 이 어지러움이 사실 영화의 핵심 연출 장치였습니다.은 비선형 구조(Non-linear Narrative)를 활용합니다. 비선형 구조란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 배열하지 .. 2026. 4. 23. 대도시의 사랑법 리뷰(낙인효과,자기다움,연대) 누군가의 과거를 빌미로 "같은 걸레랑 진지하게 만나겠냐"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정말 도덕적으로 우월한 것일까. 영화 을 보고 나서 저는 오래된 억울함이 불쑥 올라왔습니다. 타인이 붙여준 이름표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어떻게 덮어버리는지, 이 영화는 그걸 꽤 정직하게 보여줍니다.낙인효과, 소문 한 줄이 사람을 재단한다낙인효과(stigma effect)란 특정 집단이나 개인에게 부정적인 낙인이 찍혔을 때, 그것이 실제 행동과 무관하게 그 사람의 정체성 전체를 규정해버리는 사회심리학적 현상입니다. 여기서 낙인효과란 단순한 선입견을 넘어, 당사자 스스로도 그 이미지에 맞게 행동하도록 압력받는 구조까지 포함합니다.영화 속 재희는 클럽을 다니고 남자를 자주 바꾼다는 소문만으로 '기억지'에서 '미친년'으로 .. 2026. 4. 23. 대가족 영화 리뷰 (가족해체,혈연주의,새로운가족) 어릴 때 저는 가족이 뭔지 몰랐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피가 이어져야 가족'이라는 공식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 공식이 흔들린 건 동네 할머니 장례식장에서였습니다. 유전학적으로 완벽한 타인이었던 그분 앞에서 제가 흘린 눈물이, 친척 누군가를 잃었을 때보다 훨씬 더 뜨거웠거든요. 영화 대가족은 그 감각을 정면으로 건드립니다.가족 해체 시대, 우리가 놓친 질문2024년 기준 국내 1인 가구 비율은 전체 가구의 35.5%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습니다(출처: 통계청). 여기서 1인 가구 증가란 단순히 혼자 사는 사람이 늘었다는 통계가 아니라, '함께 살아갈 사람을 찾지 못하거나 찾지 않는 사회'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영화 대가족은 바로 이 균열 지점에서 출발합니다.스님이 된 주인공 문석 앞에.. 2026. 4. 22. 미키 17 리뷰 (소모픔 노동, 계급 풍자, 봉준호 각색) 태권도 사범으로 일하던 시절, 저는 스스로를 '이름 없는 사범 1'이라고 부른 적이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을 보고 나서 그 감각이 고스란히 되살아났습니다. 번호로 불리고, 죽어도 교체되고, 그래도 시스템은 멈추지 않는 이야기. 이 영화가 단순한 SF로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입니다.소모품이 된 노동자, 익스팬더블의 세계관혹시 '나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는 감각을 느껴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있습니다. 태권도 도장에 처음 들어갔을 때, 지도자로서 아이들과 호흡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수업은 없었고, 제게 남은 건 안전 보조와 행정 뒷바라지였습니다. 제가 빠져도 시스템은 그냥 돌아갔을 겁니다.《미키 17》의 주인공 미키 반즈가 딱 그 처지입니다. 그는 익스.. 2026. 4. 21. 어쩔 수가 없다 (존재론적 위기, 합리화, AI 자동화) 직장을 잃은 사람이 가장 먼저 잃는 게 뭔지 아십니까. 저는 그게 '월급'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가'라는 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태권도 지도자의 꿈이 좌절되고 행정 지원 업무로 밀려났을 때, 저도 그 감각이 서서히 지워지는 걸 느꼈거든요.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는 바로 그 지점을 건드리는 영화입니다.20년 경력도 막지 못한 도끼질, 그 존재론적 위기유만수는 태양 제지에서 20년 넘게 커리어를 쌓은 인물입니다. 올해는 펄프맨상까지 받았죠. 그럼에도 하루아침에 구조 조정의 대상이 됩니다. 미국계 사모 펀드(Private Equity Fund)가 회사 지분을 사들이고 인력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여기서 사모 펀드란 소수의 기관 투자자나 고액 자산가로부터 자금을 모아 기업을 인수한.. 2026. 4. 20. 이전 1 2 3 4 5 6 다음